어느 노숙인의 기도

2014. 12. 13. 12:20행복한 독서/새벽편지 모음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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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느 노숙인의 기도

 

둥지를 잃은 집시에게는
찾아오는 밤이 두렵다.

타인이 보는 석양의 아름다움도
집시에게는 두려움의 그림자 일 뿐...

한때는 천방지축으로 일에 미쳐
하루해가 아쉽고 짧았는데

모든 것 잃어버리고
사랑이란 이름으로 따로 매였던
피붙이들은 이산의 파편이 되어
가슴 저미는 회한을 안긴다.

굶어 죽어도 얻어먹는 한술 밥은
결코 사양 하겠노라 이를 깨물든 그 오기도...

일곱 끼니의 굶주림 앞에 무너지고
무료 급식소 대열에 서서...

행여 아는 이 조우할까 조바심 하며
날짜 지난 신문지로 얼굴 숨기며

아려오는 가슴을 안고 숟가락 들고
목이 메는 아픔으로 한 끼니를 만난다.

그 많든 술친구도
그렇게도 갈 곳이 많았던 만남들도
인생을 강등 당한 나에게
이제는 아무도 없다.

밤이 두려운 것은 어린 아이만이 아니다.
50평생의 끝자리에서 잠자리를 걱정 하며
석촌공원의 긴 의자에 맥없이 앉으니
만감의 상념이 눈앞에서 춤춘다.

뒤엉킨 실타래처럼...
난마의 세월들...

깡 소주를 벗 삼아
물마시듯 벌컥 대고
수치심 잃어버린
육신을 아무데나 눕힌다.

빨랫줄 서너 발 사서
청계산 소나무 에 걸고 비겁한 생을 마감 하자니

눈물을 찍어 내는 지어미와 두 아이가
"안 돼! 아빠 안돼! 아빠 " 한다.

그래,
이제 다시 시작 해야지

교만도 없고, 자랑도 없고
그저 주어진 생을 가야지

내달리다 넘어지지 말고
편하다고 주저앉지 말고

천천히 그리고 꾸준히
그날의 아름다움을 위해

걸어가야지...
걸어가야지.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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